3.1혁명 선천군 선천읍 만세 시위 주도한 김봉성
김봉성(金鳳性, 1901~194512.18.) 80주기

김봉성 사진
김봉성은 1901년 3월 3일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1945년 12월 18일 연탄가스 사고로 어린 딸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1919년 3월 1일 평북 선천군 선천읍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김봉성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사위였다. 도산의 형 안치호의 사위로, 아내 안맥결은 해방 후 경찰관으로 서울시 제3대 여자경찰서장을 지냈다.
김봉성은 오산학교 초대 이사장을 지낸 민족대표 이승훈(대한민국장,3.1운동,1962)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펼칠 때, 신성학교 4년에 다니고 있던 김봉성은 신성학교 스승인 교사 홍성익(독립장,임시정부,1963)과 김지웅에게 학생들도 동참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김지웅의 지시에 따라 동급생인 장일현·고병간(애족장,3.1운동,2018)·박찬빈 등과 도쿄 유학생들이 발표한 2.8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3월 1일 오후 2시 신성학교 학생들과 예수교 보성여학교 학생들은 함께 평북 선천읍 천남동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선천 군민 1천여 명은 선천읍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을 벌이자 경찰과 선천수비대는 총을 발포하자 십수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김봉성은 주동자로 체포되어 1919년 6월 3일 평양 복심법원에서, 출판 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경의 감시대상 김봉성 사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쥬오대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30년 흥사단에서 활동하였다. 1933년 동아일보 선천 지국 기자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인 1934년 안창호의 조카 안맥결(건국포장,국내항일,2018)과 결혼하고 두 사람은 안창호(대한민국장,임시정부,1962)가 설립한 점진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38년 2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병보석으로 가석방되고 치료 도중 그해 3월 10일 별세하자 김봉성은 평소 죽으면 유상규(애족장,중국방면,1990)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도산의 유언에 따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 망우산 유상구 묘소 옆 아버지가 들어갈 묫자리에 안창호 선생의 유택을 마련하였다.
1945년 12월 18일 딸 김자영(8세)과 함께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12월 20일 망우리공동묘지 도산 안창호 선생 묘소 왼쪽 30여 미터에(묘지번호 203550) 묻혔다. 그 앞의 묘가 딸 김자영의 묘(묘지번호 203547)였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포장에 추서하였다.
2016년 4월 27일 유족들이 묘지 관리 어려움으로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320실 055호로 김봉성 독립지사의 비석만 남기고 안장했다. 먼저 4월 24일 딸 김자영은 화장 후 산골했다.

김봉성 묘비
안맥결(安麥結, 1901~1976)은 1901년 1월 2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림면에서 평범한 기독교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안치호는 도산 안창호의 친형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동생의 권유로 기독교 장로회에 입교하여 평생 독실한 신자로 살았다. 맥결이란 이름은 춘궁기에 결실을 맺는 보리에 비유한 것으로 숙부인 안창호가 지어주었다.
3·1혁명을 겪고 난 이듬해인 1920년 초, 안맥결·권기옥(독립장,중국방면,1977)을 비롯한 제11회 숭의여학교 졸업생이 주축이 되어 결백회를 조직했다. 결백단·일편단심회·절제회라고도 불린다. 송죽회의 민족의식과 항일활동을 계승한 단체로 정직과 검소·국산품 애용·금주·금연운동을 표방하며 지방순회강연에도 나섰다. 결백회 내에서도 특히 이영배·안맥결·배인수·손옥련·허경신 등은 ‘특별기도단’을 결성하여 망명한 애국지사를 은밀히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안맥결 부부가 체포되었다.
1945년 12월 남편이 죽은 후 서울에서 2남 1녀를 키우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워 두 아들을 평남 강서군의 친정집에 맡겼다. 이후 3.8선으로 남북이 가로막혀 이산가족이 되었다. 1951년 1.4후퇴 때 고향집에서 여동생 안성결이 두 아들을 데려고 서울로 내려와 다시 합칠 수 있었다.
1946년 5월 미군정청 경무부는 여자경찰관제도를 설치하고 여자경찰관 간부 지원자 모집 공고를 내고 우익단체의 추천을 받았다. 이때 안맥결을 비롯한 독립촉성부인회 등 우익단체 여성지도자들이 많이 지원하였다. 6월에 간부급 여자경찰관으로 임용된 사람은 독립촉성부인단장 양한나·안맥결·고황경(친일,교육학술)·김용제·김현숙·김분옥 등 16명이었다. 이들은 국립경찰학교에서 간부 훈련을 받은 후 그해 7월 경무부 공안국 안에 신설된 여자경찰과(초대과장 고황경)에 배치되어 여자경찰관의 지도와 여자에 대한 범죄예방과 풍기 선도를 담당하였다. 망우리공원 3.1혁명 전날 유관순(대한민국장,3.1운동,2019) 열사와 결성한 이화여고 6인결사대 김분옥 여사도 이때 경찰로 임용되었다.
1952년에는 총경으로 승진하고 3대 서울여자경찰서장에 임명되어 2년간 근무했다. 당시 여자경찰서는 부녀자, 노인, 소녀의 보호, 풍속 업무 등을 담당했다. 1954년 치안국 보안과 여경계장으로 복무했으며, 1957년 경찰전문학교 교수로 발령받아 후배 경찰들에서 한글과 영어를 가르쳤다. 1961년 7월 사직하여 15년간의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사직 때의 뒷이야기가 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로부터 정권에 합류하기를 권유받았으나, 안맥결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정권에 협력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다고 한다.
안맥결은 경찰 재직 시 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가져오면 돌려보냈고, 직원들에게 항상 청렴과 봉사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의 성실한 근무 자세와 봉사정신으로 인해 1954년 무공포장(여자경찰서장)과 1960년 근정포장(경찰전문학교 교수)를 받았다. 1976년 1월 14일 향년 7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안맥결 지사에 대한 서훈 신청은 유족과 흥사단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나, 서훈 요건과 자료 미비로 국가보훈처로부터 여러 차례 반려되었다. 그러던 중 경찰청은 산하에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단을 두고 올바른 경찰정신의 뿌리찾기 사업을 벌였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 10월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경찰관 5명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는데, 그중에 안맥결 독립지사가 포함되었다. 마침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안맥결 지사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타계 42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맥결 지사는 숙부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대로 “애국자를 길러내는” 삶을 살았다.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했으며 해방 후 청렴하고 성실한 삶으로 후배 경찰의 표상이 되었다. 여성독립운동가로서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강직한 경찰관으로서 살아온 안 지사의 웅혼한 삶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망우리 도산 안창호 선생 묘지 참배 안맥결과 김분옥 여사 동생 김만식 '65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국립현충원(서울,대전) 묻힌 독립유공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 김병진, 김봉성, 나용환, 동우 이탁, 박동완, 박찬익, 송진우, 이종일, 홍병기
대전 – 강학린, 김승민, 김사국, 김승민, 김정규, 김진성, 김춘배(추정), 나운규, 명재 이탁, 문명훤, 박승룡, 백대진, 서병호, 선우훈, 유진태, 이태건, 조종완, 최익환,
실전 – 신명균(2003무연고처리, 용미리에서 실전)
이량 – 육군 대령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봉안
국립4.19민주묘지 – 박동훈, 이종량, 전한승, 진영숙 외 다수 망우리공동묘지에 묻혔다 ‘63년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로 이장함.
실전 - 이윤식 6.3항쟁 열사
개인묘지 선영 공원묘지 등으로 이장한 유명인사
곽영주, 김동명, 김윤근, 김활란, 민병덕, 박길용, 박마리아, 손창환, 송석하, 안석영(석주), 오기선, 이경숙, 이기붕, 이명민, 이정애, 이정재, 임방울, 임숙재, 임화수, 장석인, 장해윤, 조용수, 채동선, 최백근, 함대정, 함이영, 현요한 등
조각가 차근호는 평양 출신으로 단신 월남하여, 동향인 이병일 영화감독이 주도하여 ’64년 망우리에 묻혔는데 그 뒤로 묘지의 행방이 묘연함
재이장 – 시인 김영랑(‘24)
재이장 추진 –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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