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공원(인문학)

해방 후 민중의 애환을 노래한, ‘세월이 가면’ 시인 박인환 탄생 100주년 서거 70주기 추모행사

정종배 2026. 3. 16. 21:58

해방 후 민중의 애환을 노래한, ‘세월이 가면’ 시인 박인환 탄생 100주년 서거 70주기 추모행사

사색의 길에서 시인 박인환 유택으로 내려가는 입구 안내판 / 사진 정종배

 

「인천항」·「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목마와 숙녀」·「세월이 가면」 등의 시가 대표작인

시인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생으로 올해가 탄생 100주년과 오는 3월 20일 서거 70주기를 맞이한다.

그의 문학 세계와 시대정신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인제군 문화재단이 주최하여 강원도 인제와 서울에서 열린다. 3월 14일부터 20일까지 추모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3월 20일 오후 2시 서울시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시인 박인환의 유택에서 추모행사의 정점으로 공식 추도식이 펼쳐질 예정이다.

송지영이 쓴 시인 박인환 묘비 / 사진 정종배

시인의 장남인 박세형 시인 등이 참석하는 추모식에서는 추모 시 낭송을 통해 박인환 시인의 시가 낭독되며, 그의 시가 담고 있는 문학적 메시지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전하는 시간도 펼쳐질 예정이다.

올해 추모행사에서는 시와 음악이 만나는 특별 공연도 펼쳐진다. 싱어송라이터 샹송제이가 참여해 대표 시를 음악으로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인다.

인제군 문화재단은 추모 주간뿐 아니라 박인환 시인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선양사업도 이어갈 계획이다. 먼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기념 전시와 기록화 사업을 연중 추진한다. 또 9월에는 <박인환문학축제>를 개최한다.

인제군문 화재단 관계자는 “탄생 100주년과 작고 70주기를 동시에 맞이하는 올해는 박인환 시인의 문학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추모행사를 시작으로 학술 공모와 문학축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업을 통해 고인의 예술혼이 미래 세대에게도 깊이 전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인 박인환의 묘비 뒷면 / 사진 정종배

 

2021년 6월 25일 오후 5시 ‘중랑문화재단’이 주최한 음악낭독극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에 유족 대표로 초청받은 시인의 큰아들 1948년생인 박세형 씨가 극이 끝나고, <세월이 가면> 시와 노래를 완성하고 부른 장소가 최불암 어머니 이명숙의 '은성' 막걸리집이 아니라 선술집인 '경상도집'이었다.

1956년 1월 중 이미 아버지 박인환 시인과 이진섭 두 분이 8절지 도화지에 시와 음표가 아라비아 숫자로 악보가 깨끗하게 그려진 <세월이 가면> 집에 가져온 것을 국민학교 1학년생으로 보았다.

아버지 시인 박인환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없는 자상하고 멋진 가장이었다고 증언했다.

후일담은 최불암 어머니 이명숙 씨가 두 군데 술집의 주인으로 등록되었다.

중랑구청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세운 시인 박인환의 유택 안 안내문 / 사진 정종배

 

시인은 자유문학상’ 수상 실패와 평소 흠모한 시인 이상의 기일이 4월 17일인데 3월 17일로 잘못 알고, 1956년 3월 17일 한국일보에 「죽은 아폴론 – 이상李箱 그가 떠난 날에」를 발표한 뒤, 3일 연속 폭음하다 ‘생명수(당시 파는 음료수)를 달라’고 외치며 심장마비로 1956년 3월 20일 저녁 9시 30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했다.

 

「죽은 아폴론 – 이상李箱 그가 떠난 날에」 / 박인환

 

오늘은 3월 열이렛날/ 그래서 나는 망각의 술을 마셔야 한다/ 여급 〈마유미〉가 없어도/ 오후 세시 이십 오분에는/ 벗들과 〈제비〉의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그날 당신은/ 동경 제국대학부속병원에서/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 허망한 서울의 하늘에는 비가 내렸다/ 운명이여/ 얼마나 애태운 일이냐/ 권태와 인간의 날개/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도/ 성좌星座를 간직하고 있다// 정신의 수렵을 위해 죽은/ 〈람보〉와도 같이/ 당신은 나에게/ 환상과 흥분과/ 열병과 착각을 알려주고/ 그 빈사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문학에/ 따뜻한 손을 빌려준/ 정신의 황제// 무한한 수면睡眠/ 반역과 영광/ 임종의 눈물을 흘리며 결코/ 당신은 하나의 증명을 갖고 있었다/ 〈이상李箱〉이라고 -「죽은 아폴론 – 이상李箱 그가 떠난 날에」

- 1956년 3월 17일 한국일보

 

시인 박인환 유택 곁에 피는 생강나무 꽃망울 강원도에서 아주까리 동백꽃이라함 김유정 소설의 동백꽃이다 / 사진 정종배

시인장으로 3월 22일 망우리공동묘지에 친구들이 무덤에 카멜 담배와 조니 워커 한 병을 묻어 주었다.

시인의 유품은 사진 몇 장 남기고 죄 불로 사라져 거의 없다. 명동 댄디보이에 대한 아내의 가슴 조인 결과였다. 묘비는 그해 추석날 송지영 글로 문우들이 세웠다.

 

지금도 사람들이 참배하며 담뱃불을 붙여 단비에 놓고 술 한 잔을 올리며, 시인의 영혼을 위로하며 시인의 시를 외우며 한 잔의 술을 마신다. 늦가을 낙엽이 뒹구는 저녁노을 물들 때가 가장 분위기가 살아나는 묘역이다. 묘지번호는 102308이다.

 

중랑구청에서 세운 시인 박인환의 연보비

[박인환 시인의 시 세계]

 

박인환 시인의 시 세계는 한국전쟁을 분기점으로 두 가지 양상을 띤다.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신시론’ 동인을 결성한 뒤 양병식, 김수영 등과 함께 모더니즘 운동을 추구하면서 진정한 민족 국가 건설을 지향한 해방기의 시 세계와, 전쟁이 가져온 폭력의 참상을 고발하면서 상실감과 비애감을 노래한 한국전쟁 이후의 시 세계로 구성되는 것이다.

해방기에는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남풍」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약소국가의 민중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에 적극적으로 항전해 민족 해방을 이루기를 응원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 성조기가 퍼덕이는”(「인천항」) 해방기의 인천항 모습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를 받아온 홍콩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경계한 것도 같은 인식으로 볼 수 있다.

박인환 시인은 1955년 『선시집』(산호장)을 간행했는데, 시집의 후기에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 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었다.”라고 토로했듯이 한국전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의 아픔과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극복 의지를 가지고 시를 썼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사회적 존재로서 의지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행동이라는 신념으로 동시대의 시인들 중에서 가장 전위적인 위치에 섰던 것이다. 그의 불후의 명작인 「목마와 숙녀」, 「검은 강」, 「세월이 가면」 등이 그 산물이다.

 

시인 박인환 유택의 전경 중랑구청 뒷산 봉화산과 한북정맥 도봉산 북한산이 환히 보인다. 인제군문인협회에서 두 번이나 고향 인제 진달래꽃을 옮겨 심었으나 양쪽 두 그루만 살아남아 망주석인듯 꽃망울을 터트린다 / 사진 정종배

[영화평론가 박인환]

박인환 시인은 1954년 오종식, 허백년, 유듀연, 이봉래, 김규동 등과 함께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발족한 뒤 59편 이상의 영화평론을 발표했다. 국내 영화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제작되고 상연된 수백 편의 영화를 소개했고, 한국 영화계에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그가 영화평론을 열정적으로 쓴 것은 영화를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모더니즘 예술의 거울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영화감독의 역량이 부족하고 촬영장 하나 없고 촬영 시설이 그지없이 열악한 국내 영화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감싸 안았다. 영화인들의 열정적인 헌신과 재능을 응원하면서 발전 가능성을 전망한 것이다.

 

중랑망우공간 안내문에 특별히 걸어놓은 시인 박인환과 인제 그리고 망우역사문화공원 / 사진 정종배

 

[번역가 박인환]

박인환 시인은 새로운 세계인식으로 현대사회를 반영하고자 외국 작품들을 번역했다. 미국의 소설가인 존 스타인벡이 소련을 방문한 뒤 발표한 『소련의 내막』 등 전쟁에 반대하는 작품들, 음악인의 열정적인 삶을 그린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인 『이별』 등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작품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바다의 살인」을 비롯한 추리 소설 등을 감각적인 문체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그는 모더니즘 문학을 탐구하기 위해 토머스 스턴 엘리엇, 스티븐 스펜더, 위스턴 휴 오든 등의 시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세계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