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정종배
진관사 아미타불 아래의
바위 틈새
제비꽃 일곱 형제가 살고 있다
올 여름 최악의 폭염에 이파리가 데처져
오가는 길 불편해
페트병에 감로수를 가득 채워 물을 줬다
다음 날 파랗게 살아나 잘했구나
어깨가 으쓱했다
며칠째 물을 주니 즐거웠다
저녁 산책 바위에 삼배하고
제비꽃을 헤아렸다
여섯개다
다시 세어 봐도 그렇다
한 녀석이 뿌리를 드러내 말라 비틀어졌다
태조 이성계 피비린 내 나는 말발굽소리
집현전 학사들의 훈민정음 창제 사가독서 가갸거겨
김신조 일당의 다급한 군화 발자국 소리와
선남선녀의 발자국 먼지를 퍼담은
바위 틈 억겁의 흙과 이끼에
제 힘만큼 이슬이나 빗방울을 받아 먹고 자랐는데
또랑시인 겁없는 물주기에
터전 잃고 목숨까지 버렸다
지금까지 함께한 아이들의
끼와 힘이 익기 전에
내 얕은 눈과 거친 입으로
뽑아내고 거덜내지 않았는지
달빛 아래 쏘쩍새 울음소리
구슬프다 가슴을 후벼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