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정종배
없는 자가 버티기 가장 어려운 겨울 아침 출근길
1호선 소요산행 전동차
멋진 신사 한 분이 맨 앞 칸 전 좌석을 차지하여
전철역마다 들어오는 손님들 왠 떡이냐
빈 자리 앉으려다 급하게 일어나
코끝을 문지르고 자리를 옮긴다
스포츠용 썬그라스 푸른 빛이 두리번 거리고
챙 짧은 모자 반쯤 돌려 쓰고
반백의 턱수염 구렛나루 콧수염
누구도 따라 기를 수 없는
폼나는 기운을 내뿜으며
목 긴 방한 신발까지
한 눈에 확 띄게 여유롭다
오로지 냄새를 잡지 못해
들통나는 노숙자
밤새 언 몸을 이른아침 전동차를 집어타고 녹이는데
무늬가 예쁜 장우산까지
잘 나갈 때 모습의 치장을 그 누가 해주었을까
씻지 않은 몸과 옷에 밴 찌든 내
확 벗겨 몸 씻기고 옷을 세탁한 뒤
손 잡고 발맞춰 걸으면
쑥부쟁이 꽃향기 풀풀나는
정말 멋진 애인이 되고도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