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과 최승희와 동백나무 영랑은 열다섯 살에 한 살 연상 김은초와 결혼하여 일년만에 질병으로 요절한 아내를 집안 선산 맨 아래 무덤을 쓰고 상경하여 휘문고 학생으로 고향 강진 3.1운동 관련 투옥 독립운동 서훈을 받았다 영랑은 일본 유학 당시에 박열과 하숙을 함께 하고 송정리 출신 용아 박용철을 시업으로 이끌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참상을 보고 급히 귀국했다 휘문고 동기인 최승일의 여동생 숙명여중 2학년 최승희와 사랑을 나눴다 양쪽 집안 반대로 허락을 못받자 강진 생가 뒤안의 동백나무 가지에 목을 맸다 머슴의 발견으로 살아났다 가지는 잘렸으나 상처는 아물어 고목으로 동백꽃은 모란이 피고 질 때를 넘고 넘어 한세기 전 사랑의 이야기를 사계절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