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사문화공원 57

1923 관동대진재의 기억과 기록

1923년 관동대진재의 기억과 기록 일시: 2023. 11.25.(토) 14:00 - 17:00 장소: 경북대학교 대학원동 214호 비대면주소: Zoom(870 323 9326, https://us02web.zoom.us/j/8703239326) 주최: 한일민족문제학회·경북대학교 사학과 인문학술원 산하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일정: 14:00-14:10 개회사 14:10-14:40 1923 관동대학살 - 생존자의 증언 (정종배) 14:40-14:50 휴식 14:50-15:20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명단의 생성 (西村直登) 15:20-15:50 관동대진재의 유적조사와 전시 (천승환) 15:50-16:05 1923년 관동대진재 기록의 출처 연구 (김경남) 16:05-16:15 휴식 16:15-16:50 ..

김응교

김응교 들판과 교실에서 같은 사람 시인과 평론가 어느 한 곳 기울지 않는 저울 품속은 백석 "사슴"의 세시풍속 슬기는 신동엽 "금강"의 신하늬 눈빛은 김수영 "풀" 끝의 바람 울림은 윤동주 "서시" 처럼 네 시인의 아우라로 집을 짓는 배려와 봉사의 김응교 동학과 동경대전 카프카 등 동서양 고전 읽기 강의 모임 앞장 서며 망우리 만해 유택 함께 하여 시의 고갱이로 난바다 수평선을 그으며 출렁이길 손모아 기도한다 1923 관동대학살 -생존자의 증언 다큐시집 준비하고 쓸 때에 아낌없이 응원하고 논문을 보내준 뒤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100년을 맞은 올 9월 발간한 "백년 동안의 증언" 간토대지진,혐오와 국가폭력 책과 이미 읽은 시로 만나는 윤동주 "처럼"을 보내주었다. 오는 25일 토요일 오후 2시에서 4..

이상화 시 독백 100년만에 노래로 발표한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를 돕는 사람들 1923년 10월 26일 신문에 게재한 이상화의 시 '독백' 100년만에 노래로 오늘밤 처음으로 발표한다. 1923년 10월 25일·26일 이상화의 시 「독백」 조선인 사망자를 위하여 동경에서 26일 추도회를 개최 - 조선일보 1923. 10. 25 1923년 10월 26일 동아일보 지방 소개 ‘대구호’에 발표한 신시 「독백」은 동경 유학생이었던 이상화가 관동대지진 대학살을 겪고 쓴 시이다. 이 시는 당시 조선인들의 시신이 길가에 내동댕이쳐지고, 매장되고, 강물에 내버려졌던 학살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쓴 처절한 시이다 이 「독백」이란 시는 이상화가 관동대지진 이전에 발표했던 「나의 침실로」(《백조》 3월호, 1923. 9)와..

추석맞이 우중 성묘

추석맞이 우중 성묘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인문학 글쓰기반 오늘 오후 강의는 망우역사문화공원 성묘하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을비 빗방울이 성글다 사색의 길이 한가롭다 반세기 전 폐장되어 성묘객이 드물다 유택을 오를 때는 모르다 내려올 때 빗물 젖은 흙길은 미끄럽다 서해 최학송 죽산 조봉암 만해 한용운 아사카와 다쿠미 가난하게 산 서해는 봉분 앞 맨땅 위에 세 분은 혼유석 위에다 막걸리 한 잔 올리고 성묘를 하였다 서해와 아사카와 다쿠미는 후손 및 지인이 북한과 일본에 있어서 맘놓고 성묘했다 죽산은 사형 집행 전 담배와 술 한 잔을 원했다 담배는 교도관에 의해 피고 막걸리는 드시지 못했다 죽산 유택에 술 한 잔 올리고 술을 마시는 일행을 볼 수 있다 만해는 일제 강점기 국내 머문 독립운동가 중 마지막까지..

1923년 9월 10, 11일 관동대학살 의연금 모집과 부산부두 귀국 동포 및 아사카와 다쿠미 일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를 돕는 사람들 1923년 9월 10·11일 의연금 모집과 부산부두 귀국 동포 동경지방이재동포구제회 발기 구급의 의연 모집에 대해서 〇휴지통. “동경의 참혹한 혹한 진재에 대하여 동정을 표하고 힘자라는 데까지의 원조를 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의미로 좋은 일이겠다 그러나 요전 서선지방에 비참한 수해가 있을 때는 본체도 않던 놈들까지 제가 인정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는 듯이 날뛰는 것은 좀 괴이쩍은 걸 월전까지 철이 나지 않았다가 별안간 동경 지방 지진으로 정신이 났다하면 그처럼 경사로운 일은 없겠지 이번 동경지방 지진이 생김으로 우리 조선사람에게 이익이 있다하면 이것 한 가지는 이익이라할까 만일 그자들이 여전히 총독부에 곱게 보이..

관동대학살 100년 이 밀정 밀정들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를 돕는 사람들 관동대학살 100년 이 밀정 밀정들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단다 1963년부터 10년 단위로 언론에서 무지개를 띄웠다 100년 제자리로 돌아왔나 정말로 아무렇지 않고 너무 고요하게 차분하고 질서있게 게거품을 물고서 밀정의 반역사를 연출한다 관동대학살로 6,661명 제노사이드 당했다 임시정부 조소앙 외교총장 1923년 9월 10일 일본 정부에 보낸 항의서 한 번 뿐이었다 어느 정부도 공식적인 추모행사는 물론이고 일본 정부 진상을 밝히거나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100년 정부에서 추도의 말 한 마디 없이 때 아닌 이념 갈등 부주켜 홍범도 장군은 전향을 안했기에 공산당으로 육사에서 뽑아내야 한다 천민 포수 출신이고 후손이 없는 홍..

1923년 9월 8일 9일 일본진재 영화 상영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년 위령의 종루 보수 및 추모문화제를 돕는 사람들 1923년 9월 8일·9일 일본진재 영화 상영 〇8일 조선일보 1면 ‘동경·횡빈의 전멸상태와 금후 경제계의 관측’ 〇8일 동아일보 1면 ‘동경재변과 인심 반성할 기회’라고 실었다 〇일본대진재 영화 상영과 일본대학생 최동설 일본대진재 영화를 조선극장에서 상영하고 우리 독자는 할인이 있다. 동경 지방의 공전의 진재로 “불나라” “죽음의 무덤”이 된 수라장을 편답하며 두 명의 기사를 희생에 바치어서 박히인 동경진해영화는 조선극장 주인 황원균 씨의 활동으로 제일보가 조선극장에 도착하였다. 신문지상으로만 보와도 그 처참한 광경을 능히 생각할 수 있었거든 그 현장을 박히온 활동사진을 볼 때에 과연 우리의 감회는 어떠할까? 살을 나누고 뼈..

대향 이중섭 소나무

대향 이중섭 소나무 평소 술에 취하면 독일 민요 소나무를 즐겨 불렀다는 아고리 대향 이중섭 화가 망우역사문화공원 유택 안 절친인 시인 구상이 심었다는 우정의 소나무 한 줄기가 잘렸다 솔잎에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로 봉분이 무너지고 솔잎에 송진으로 떼가 죽어 오른쪽 가지를 쳐주길 바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반대편 줄기를 잘랐다 이해 못할 일이 벌어지는 수상한 이즈음 국가보안법을 들이될 곳이 긴급출동반인가 톱날인가 바람인가 붉은소나무인가

1923년 9월 3일 윤치호 진판옥 HY생 일기

김교신 최태용의 스승인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아쿠타가와상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도 자경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담론으로 알려진 자연재해를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징벌로 생각하여 재난을 계기로 민심의 쇄신을 꾀하는 천견론天譴論 등으로 조선인 대학살을 변명했다. 1923년 9월 3일 신문 기사와 윤치호 진판옥 HY生 일기 일본 유사 이래 초유의 대지진에 대한 1923년 9월 3일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 요약 염려되는 조선인의 소식 동경 부근에 흩어져 있던 수천의 학생과 노동자 그네의 생사존몰은 과연 어찌 되었는가? 아아! 일본의 큰 지진! 동경의 큰불! 그 같은 참상을 겪게 된 조선사람의 동경 유학생의 안위는 과연 어떠한가? 다행히 방학 중임으로 유학생의 대부분은 아직..

관동대학살 100년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 걷기

관동대학살 100년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 걷기 1923관동대학살 100년 20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 앞에서 관동대학살 희생자에 대한 묵념하고 사색의 길을 걷겠습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사색의 길 돌면서 관동대학살 당시 현장에서 참상을 목격한 김영랑 송석하 조봉암 최신복 장형두 강상필 등과 유상규는 오사카 노동자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분명 당시 유학 중인 김말봉 김상용 노창성 등 조사요원 구조활동 방정환 김봉성 등 작품에 반영한 나운규 계용묵 등 일기를 쓴 아사카와 다쿠미 등 안창남과 이화여전 기숙사 미인 금란동산 이정애와 영화감독 노필 백남순 화가와 이중섭 자경단원 우치무라 간조의 친구 사이토 오토사쿠 등의 유택을 중심으로 답사 참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정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