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래도 저래도 정종배 괜찮다 저래도 괜찮다 애인을 오토바이 뒷좌석에 꼭 붙잡게 앉히고 장맛비를 뚫고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어 눈쌀을 무시하며 전철역 계단 앞에 내려놓고 비옷을 접어주며 입을 쪽 맞추는 출근길 사랑에 방음벽 타고넘어 능소화가 흐드러졌다 사랑은 저래도 괜찮다 정종배 시 2018.07.04
동사 동사/정종배 35년 전동차로 출퇴근 지하철은 동사다 시각장애인의 안전보도블럭과 안전지팡이 환승통로의 중국산 더덕 향기 늙은 거지의 마른 손 전도사의 예수님 복음 말씀 자동휠체어 리프트의 빨갛게 오르내린 신호음 우리집은 억바우 마누라 나는 시와 기도와 아이들 사람이 동사다.. 정종배 시 2018.07.04
노을 노을 정종배 해돋이와 해넘이에 적당한 구름이 떠있어야 노을은 검붉게 배어든다 바람도 불어야 눈을 뗄 수 없는 빛의 축제 환호하며 안복을 누린다 사람도 제 하늘에 구름이 끼어야 지루하거나 졸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풍요롭다 오늘하루 가까운 사람의 하늘에 구름으로 동무가 .. 정종배 시 2018.07.01
어수리꽃 어수리꽃 정종배 어린 순은 수라상에 오르는 나물이다 꽃대가 훌쩍 크면 꽃들의 행진이 눈부시다 꽃가지에 꽃들이 피어나는 시기와 절정의 아우성 소리가 다 달라 바쁘다 지나치는 사람도 끈질지게 피고지며 안부를 묻고묻는 꽃향기에 붙들려 사랑한다 무릎꿇어 축제에 빠져들 수밖에 .. 정종배 시 2018.07.01
보리수 보리수 정종배 보리수 내 고향에선 주근깨 투성이 점순일 골려 먹을 때 포리똥이라고 잘 익은 열매의 심장 소리 붉디붉어 입안에 넣으면 시금털털 떫지만 우물우물 씨만 빼고 씹으면 씹을수록 달콤한 맛 어릴적 담장 너머 매달린 열매가 우리 집 것이다 아니다 이웃집 애들과 싸우던 추.. 정종배 시 2018.07.01
산안개 산안개/정종배 산안개는 산능선을 오르내려 비가 온다 여름 숲에 예보한다 삶에 있어 높이와 깊이를 잘도 재며 피었다 스러지는 산안개가 있다면 애터지고 팍팍한 내 삶 길에 꽃이 피고 나무가 우거져 희망의 끈은 촉촉하여 손을 놓지 않았다 정종배 시 2018.07.01
내시묘역길 내시묘역길 정종배 6월 마지막 날 늦은 오후 내시묘역길을 걷는다 소나기가 세차게 지나간 뒤 저녁노을 창릉천 타고넘어 물먹은 소나무도 붉디붉고 산딸기는 노을빛으로 익어가며 노을이 그려내는 한북정맥 노고산 능선 너머 구름의 황홀경에 얼이 빠져 지난 반년 안아주고 지켜준 소중.. 정종배 시 2018.07.01
장마철 장마철 정종배 육칠월 짙푸른 숲 장마철 물먹은 낙엽은 봄꽃보다 아름답고 단풍보다 더 붉다 붉은 카펫 펼쳐놓는 빗방울 소리에 촉촉하게 젖어 걷는 내 마음도 환하다 정종배 시 2018.07.01
소나기 소나기 정종배 대한민국 국토는 청춘이다 소나기에 개울은 황토물이다 비바람에 갈대는 자빠지고 개망초 꽃대는 넘어지며 억새는 빗방울을 손구구로 억세게 물길을 터준다 삼천교 아래에 청춘 남녀 불어나는 개울물 바라보며 사랑의 소나기를 헤아린다 정종배 시 201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