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인의 방

거미/정종배 뒷목과 발목과 무릎이 아파서 지하철역 계단을 피하려 버스로 환승하다 골목책방 오랫만에 들렀다 시집 권당 천원씩 여섯권 안주인께 계산하며 바깥양반 중풍 소식을 접했다 2년 안에 가게를 넘겨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단다 2년 후 정년 뒤 소일거리 목록 하나 더 추가..

작살나무/정종배 월요일 이른아침 작살나무 잘디잔 꽃들을 꿀벌이 샅샅이 작살낸다 오늘 누구 한 사람 걸리기만 해봐라 헬 수 없는 사랑으로 작살내고 말 것이다 출근길 마주치는 소요산행 전동차 1-4 출입문 앞에 서 있다 종로5가역 내리는 검은 선글라스 아줌마 좌석에 앉아서 코를 골..

소나무/정종배 역마살로 퍽이나 쏘다녀 다음 생엔 나무로 나무 중에 소나무로 태어나 비바람 눈보라에 바위 틈새 꼿꼿하게 버티어 황장목으로 자라고 싶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멧돼지네 진흙탕 목욕하고 진드기 떨어내게 밑동을 내주라면 어째야 쓸까 깝깝한 일이제만 불목..

무궁화/정종배 신이문역 2번 출구 1122번 지선버스 출근길 원자력병원행 기다리다 오르고 퇴근길 석관동 종점행 곧장 내려 산수유 자목련 영산홍 죽단화 오동꽃 모과꽃 신갈나무 능소화 도심 속 찾지 않은 벌나비 대신하여 꽃들도 꽃이지만 꽃향기로 호사를 누렸다 장마가 오락가락 녹우..

제86주기 서해 최학송 추모식 때 : 7월 14일(토) 오전 10시 30분 곳 : 망우리공원 최학송 묘지 주최 최학송기념사업회 후원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경기인터넷뉴스. 법무법인 선율. (주)서광알미늄. 서울현대정형외과. 용인요양병원. 김도형변리사. 구침한의원. 반올림피자샵 정릉돈암..

심폐소생술/정종배 집 안의 태양이신 아내가 쓰러져 의식이 없다면 심폐소생술을 주저하시겠습니까 남의 편인 남편이면 할까 말까 망설이다 골든타임 4분이 지나버린단다 오늘은 안해의 밥이 되고 꽃이 되자 카사블랑카 꽃향기도 일주일이다

미국등골나물 정종배 요즘 TV 메인 뉴스 북미 회담 자국의 이익을 위하는 트럼프 말폭탄에 도시 숲 곳곳에 피어날 미국등골나물 꽃들을 흔연스레 보기를 다짐한다 장마가 오락가락 길어지자 신이문역 2번 출구 바같 계단 손잡이 끝나는 벽 갈라진 틈새에 미국등골나물 몇 뿌리가 푸른 잎..

유기견 정종배 퇴근길 지하철 연착 방송 목소리가 성마르다 휠체어 장애인들이 생존권 문제로 승하차 데모하여 정시보다 20여분 늦게 온 전동차 안에 들어가니 아수라장이다 노인분들이 휠체어 탄 장애인을 에워싸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인격 침해를 퍼부으며 드잡이로 너희들만 권리..

법과 정치 정종배 1학기 기말고사 첫 시간 2학년 인문반 법과 정치 시험지 배부 전 OMR답안지 받아들고 거침 없이 마킹하고 머리 박고 잠을 청하던 두 여학생 2교시 영어 시험 허리 펴고 문제를 풀어낸다 정년을 두 해 남긴 늙은 교사 법과 정치 답안지 점검하며 두 녀석 체크가 완전 달라 ..

잔디씨/정종배 1억불 수출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름방학 숙제로 학교에 잔디씨를 편지봉투 하나씩 제출했다 잔디씨가 익어갈 때 진주 정가 선산의 잔디씨는 남아나지 않았다 한여름밤 냇가에 멱감고 독배기 바위에 귓물을 빼고 잔디밭에 앉아 별을 헤고 있으면 서울구경 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