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 2302

치자가 익어간다

치자가 익어간다 겨울비가 여름비와 헷갈리게 아침까지 내린다 잔설이 살아있는 산골짜기 그늘도 새치가 돋은 콧수염 면도하듯 말끔해 복수초 꽃봉오리 내밀어 봄맞이 향기가 짙겠다 베란다 치자꽃 피었을 때 첫사랑 되새기며 겨울을 지냈다 치자 열매 익어간다 칠남매 막내의 생일이다 엄마표 무지개떡 빨주노초파남보 색색이 맛있게 물들다 파란색이 빠진지 일곱해다

정종배 시 2023.01.13

충시차 벌레똥차

충시차 벌레똥차 코로나 이전에는 계절별로 각기 다른 보이차 맛을 봤다 작년 일년 이런저런 이유로 뵙지 못한 스님에게 아픈 허리 압봉과 자석 치료 받은 뒤 점심공양 함께한 후 오랜만에 1980년 이전 차와 문혁전차 등 보이차를 원없이 음미했다 오늘은 충시차 벌레똥차 일명 용주차까지 새로 개봉하여 내주셨다 보이차를 먹고 자란 벌레가 누운 똥을 붓으로 긁어모아 덖어 만든 보이차로 처음 맛을 보았다 지금까지 마셔본 보이차와 다른 색과 향기와 맛과 뒤끝 오감이 깊고 오래 남았다 3시간 넘게 차담 후 보이차에 빠지면 절간 두 채는 쉽게 잡아 먹는다는 100년 된 보이차를 맛보려 도반 일곱 모두가 4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순서를 기다려 봤다는 스님에게 길상사 '맑고 향기로운 소식지'와 달력과 보이차 한 편을 ..

정종배 시 2023.01.02

함평천지

함평천지 의 54개 고을 중 첫번 째 고을인 함평천지 함평엄다학다리 벌판에서 나온 쌀을 먹고 죽은 구신은 상여도 무겁다고 전해져 1899년 서울 1915년 부산 1923년 평양 대도시 전기 궤도 빼고는 일제시대 군 단위 최초로 일본인 한 자본가에 눈에 띄어 1927년 1월부터 학다리역에서 함평읍까지 6.1Km 전국 최초 가솔린 동차인 궤도열차를 운행했다 1960년대 초 사설 궤도 폐선된 뒤 그 도로를 오가는 버스를 궤도버스라 부른다 남녘 고향 사나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난리지만 내년에 농사는 물론이고 상수도 물조차 택도 없다 눈보라는 아니고 눈 앞을 가리는 함박눈이 좃나게 와부러 궤도버스 발통을 묶어 놓길 성탄절 저녁기도 드린다 함평궤도 이야기 보따리 읽어보시길 [손길신의 철길 ..

정종배 시 2022.12.25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함평읍내 성당 성탄 자정미사 드리고 눈밭에 발목까지 빠지며 수산봉 돌아 해동 함평학다리 들판 지나 함평천 대봇둑 건너서 숲쟁이 향교 고시 화산마을 신자들 호롱불 깜박이는 집 문 앞에서 촛불을 켜 손에 들고 성가를 부르고 엄마가 3년 동안 외가에서 간병을 마친 뒤 처음 맞은 성탄절 화산잔등 넘어올 때 붙잡은 엄마의 야윈 손이 따뜻해 국민학교 3학년인 셋째는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사진은 함평나비축제장 뒷산 수산봉과 함평학다리 벌판입니다 제공은 페친 정병오입니다

정종배 시 2022.12.24

고라니와 도산서원

고라니와 도산서원 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 숙소에서 겨울비가 성글거려 머뭇대다 예던길 끝트머리 청량산 육육봉이 보이는 전망대를 기를 쓰고 올라가 내앞 출신 76학번 과 동기인 김승종 시인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여 입학한 해부터 태어난 안동호 물안개가 피어 오른 낙동정맥 능선 위에 해돋이를 알현하는 사이에 청담동 외우 용환 즐런 부부 새벽 여명 물드는 한강 따라 달리기는 오늘도 멈추지 않았다는 페이스북 소식에 댓글이 내달린다 도산서원 입구 걷는 길 첫 구비 공자의 77대 종손이 지은 한시 을 새긴 시비 뒤 천원 지폐 뒷면의 배경인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 한 마리가 금이 간 얼음 위를 몇 번을 넘어졌다 일어나 안동호를 건너서 의촌리 솔밭 대신 솟아난 갈대밭 속으로 들어간다 도산서원 오가는 유일한 의촌리 외나무..

정종배 시 2022.12.23

이태원 참사 49재

이태원 참사 49재 성탄절 고백성사 보기 전에 10 29 이태원 참사 현장인 골목길 가슴을 억누르며 둘러보고 희생자 49재 합동 분향소에 참배를 하였다 국화꽃 한 송이 장갑을 벗고 받아 줄을 서 기다렸다 영정 사진 눈 맞추지 못하고 발걸음 옮겼다 핫팩이 영정 사이 사이에 놓여 있다 사랑과 질서가 안전한 복된 곳에 영혼이 자리잡길 손모아 기도드렸다 유가족들 흐느끼는 울음 소리 한파를 물리치고 49재 몰려드는 참배객들 곳곳에 안전 위해 때늦은 안전봉이 분주하다

정종배 시 2022.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