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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58 시인 박인환 - 시인 박인환과 소설가 김광주의 일화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58 시인 박인환 2026년 3월 20일 오후 2시 박인환 시인의 유택에서 “시인 박인환 서거 70주기 탄생 100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전 경향신문 기자 조운찬 문필가 사진 / 정종배이 자리에서 전 경향신문 기자였던 조운찬 문필가는 경향신문사 근무 기자 선배이기도 한 시인 박인환과 소설가 김광주의 일화를 소개하였다.소설가 김광주의 필화사건을 겪을 때, 앞장서 그 문제점을 밝히고 기사화하면서 권력에 맞서 행동을 보여준 이가 시인 박인환 기자였다고 밝혔다.한국전쟁 전후 댄디즘에 젖은 댄디보이로 버버리 깃 세우고 명동의 골목을 휩쓸고 다니며 모더니즘의 시를 쓴 시인으로만 알려진 시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소설가 김광주는 1952년 1월호 《자유세계》(홍문..

카테고리 없음 2026.03.23

시인 박인환 70주기 추모식과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시인 박인환 70주기 추모식과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2026년 3월 20일 오후 2시, 시인 박인환 서거 70주기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추모식이 망우역사문화공원 시인의 유택에서 열렸다. 오늘은 절기가 춘분이다. 꽃샘추위 영향으로 오전엔 바람이 일었다. 오후 행사 당시에는 햇볕도 좋았다. 시인의 큰아들인 박세형 시인은 올해도 고맙다고 인사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시인의 따님과 그 딸인 외손녀가 함께했다. 시인의 따님은 중랑구에 거주한다. 올해도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나눴다. 둘째 아들은 녹내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추모식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 일컫는 인제군 인제문화재단에 주최 주관 하였다. 올해는 상차림도 특별했다. 예년보다 행사 준비와 진행과 뒤풀이까지 신경을 더 썼다. 제물도 ..

해방 후 민중의 애환을 노래한, ‘세월이 가면’ 시인 박인환 탄생 100주년 서거 70주기 추모행사

해방 후 민중의 애환을 노래한, ‘세월이 가면’ 시인 박인환 탄생 100주년 서거 70주기 추모행사​사색의 길에서 시인 박인환 유택으로 내려가는 입구 안내판 / 사진 정종배 「인천항」·「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목마와 숙녀」·「세월이 가면」 등의 시가 대표작인 시인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생으로 올해가 탄생 100주년과 오는 3월 20일 서거 70주기를 맞이한다.그의 문학 세계와 시대정신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인제군 문화재단이 주최하여 강원도 인제와 서울에서 열린다. 3월 14일부터 20일까지 추모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오는 3월 20일 오후 2시 서울시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 시인 박인환의 유택에서 추모행사의 정점으로 공식 추도식이 펼쳐질 예정이다.송지영이 쓴 시인 박인환 묘비 / 사진 정..

3.1혁명 선천군 선천읍 만세 시위 주도한 김봉성김봉성(金鳳性, 1901~194512.18.) 80주기

3.1혁명 선천군 선천읍 만세 시위 주도한 김봉성김봉성(金鳳性, 1901~194512.18.) 80주기 김봉성 사진김봉성은 1901년 3월 3일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1945년 12월 18일 연탄가스 사고로 어린 딸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1919년 3월 1일 평북 선천군 선천읍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김봉성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사위였다. 도산의 형 안치호의 사위로, 아내 안맥결은 해방 후 경찰관으로 서울시 제3대 여자경찰서장을 지냈다. 김봉성은 오산학교 초대 이사장을 지낸 민족대표 이승훈(대한민국장..

5.16 군사쿠데타 군부세력에 의해 간첩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사장조용수(趙鏞壽, 1930~1961.12.21.) 64주기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5.16 군사쿠데타 군부세력에 의해 간첩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趙鏞壽, 1930~1961.12.21.) 64주기 남과 북 분단의 조국에 옳고 바른 언론을 펼치겠다던 한 사내의 결기가 꺾인 분노의 죽음이 한 갑자 돌고 네 해를 더한 한파에 움츠린 가슴에 뜨겁게 닿았다. 한 젊은 언론인의 꿈이 짓밟힌 억울한 길은 이제야 꽃봉오릴 터트리고 꽃향기가 번진다.통일의 길을 가고자 한 사내의 탕탕한 길을 반공으로 끊어버린 스네이크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은 반신반인 반열에 오르고, 그 딸 박근혜(1952~ )는 아버지의 후광과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 정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권좌를 누리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 국정농단 탄핵받아, 가슴에 503 수인번호 박고서, 밥 ..

간토 대학살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국회 본 회의 가결

간토 대학살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국회 통과​2025년 12월 2일 오늘은 역사에 기록될 날로 한일외교사에 새로운 출발의 계기와 디딤돌이 마련되었다​몇 번이나 발의된 '간토대학살 특별법' 법안이 여야정쟁과 일본 정부와의 관계를 핑계로 버티다 회기 종료하며 자동폐기 되었다가​​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통과를 약속했던 법안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지난 8월 23일에도 현지에서 재일동포들과 만나 간토대학살을 언급하며 "다시는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 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22대 국회 윤건영 의원이 발의한 간토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 등 총 6개..

동아일보 초대 주필설산(雪山) 장덕수(張德秀, 1894~1947.12.2.) 78주기

동아일보 초대 주필 설산(雪山) 장덕수(張德秀, 1894~1947.12.2.) 78주기​장덕수 박은혜 부부 유택 장덕수는 동아일보 초대 주필 및 부사장으로 신한청년당 한국민주당 외교부장과 보성전문학교 교수를 거쳤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상임간사와 국민의용대 지도위원으로 친일인명사전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장덕수는 본관은 결성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 교육자, 학자, 언론인이다. 일본 유학 후, 귀국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였다가 귀국 후 체포되어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남 하의도에 거주제한을 당했다. 그 뒤 임정 외무부차장 여운형(대한민국장,임시정부,2005)의 통역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승..

북한군묘지

북한군묘지 오는 28일 금요일 구상문학축전 오후 3시 구상문학세미나 토론자로 나서며시인 구상이 1956년에 발표한 '초토의 시' 15편 연작시의 근원을 찾기 위해오늘 오후 를 답사하였다. 동서 화합 차원으로 이른 점심 과메기를 먹고서 남과 북 통일을 위하여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6-1로 집사람과 출발했다. 매일 저녁 진관사 산보길 길섶에 을 읽는다.남과 북 통일의 지름길은 1968년 1.21 무장공비 루트를 되돌려 오르면 쉽게 되지 않을까?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오간다.침투루트 금곡리에서 매복을 하면서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새롭다 군생활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에서 하였다. 80년 전후엔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는 임진각 다리 외엔 서부전선에는 리비교뿐이었다.미군 부대 배후지로 번성했던 장파리 상..

정종배 이야기 2025.11.26

국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소아(素我) 김진성(金振聲, 1892~1968) 57주기

국외 항일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군창설 주역소아(素我) 김진성(金振聲, 1892~1968) 57주기김진성 사진김진성은 평남 덕천군 성양면 지양리 423번지에서 1892년 태어나 1968년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산3의 27번지에서 별세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자 김진성 이명으로 김필보·김정만이다. 1919년 초에 하얼빈의 노군사령관 호리왓트대장과 연락하여 해삼위를 중심으로 동지 유동열(대통령장,임시정부)·신영삼(독립장,임시정부,193) 등과 같이 한인 2세 8백여 명을 모집하여 동청철도수비대에 편입시켜 활동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하얼빈 러시아군의 용병으로서 오성만·김창연·송일훈·이승무(애국장,만주방면,1991) 등과 함께 의용병을 조직하여 실전연구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시정부와도 연락을 취하였는데..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사회운동가 이경숙(李景淑)

망우역사문화공원 인물열전 “이 겨레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사회운동가 이경숙(李景淑, 1924.3.9.~1953.11.18.) 72주기 묘비 앞면, 李景淑무덤. 묘비 뒷면, 소년시절엔 일정하 민족애의 꽃 청년 때엔 정열적인 어린의의 스승 장년엔 크리스챤홈의 태양 이 나라 MRA운동의 개척자의 하나 순수한 신앙 착한 덕행의 30년 일생은 이 고장 여성의 영원의 거울 1953년 11월 18일 서울대학교 교수 유달영 씀 성천 유달영 선생 개성 호수돈여고 이경숙 3년 내리 담임교사 입학 때는 우울하다 담임을 아버지로 믿고 따라 2학년부터 놀라운 성장에 눈을 몇 번이나 비벼 바라봤다 평균 97점 성적으로 졸업했다. 늘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겸손했다. 유달영 중매와 주례로 결혼했다. 이경숙의 한결같은 신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