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배 시인의 방

우이암/정종배 한 귀를 쫑긋 세워 아침저녁 노을을 되새기며 느긋하게 하늘을 굳걷히 지키는 우이암 오사허게 귀도 밝네 철따라 오가는 볕과 바람 안개와 비구름 이슬과 서리와 눈보라 얼마나 궁금했으면 소나무 진달래 팥배나무 귓등에 자리를 내주어 까마귀 사랑 노래 몇 번을 ..

발레리나/정종배 발레리나 최고의 발레리나 엄지발가락 발톱으로 진달래꽃 한 그루 바위 틈에 올라서 목이 쉰 프리마 돈나 독무로 오메 늦가을 온산을 끝까지 검붉게 불 지르네 오늘 하루 우이능선 종주한 우리 모두 진달래꽃으로 이 계절 최대 흥행 커튼 콜 오페라 주인공

단풍나무가 등산객에게/정종배 우리는 겨울 추위에 살아남기 위해 죽을똥 살똥 피똥을 싸는데 사람들은 이때가 아니면 언제 보느냐 놀리고 우기듯 우리보다 명품이다 택도없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우리를 웃기며 눈치없이 미어지게 품속을 더듬고 파고들어 환장해서 뒤집어진다 지들은 ..

은전 한 잎/정종배 출근길 신이문역 2번 출구 동전 한 잎 구른다 가을비에 젖어 낮게 소리가 깔린다 사람들의 눈도 따라 향기롭다 잃어버린 동전주인 주춤하다 홈으로 진입하는 전동차 소리에 급히 뛴다 복음 말씀 어긋난다 은전 한 잎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샅샅이 뒤..

오갈피나무/정종배 이문동 오래된 골목길 대문 위에 흔하게 보이는 오갈피나무 한여름 식구들 보양식에 넣고 끓여 가을이면 열매가 궁금했다 삼복염천 구탕은 언론에 밀려나 특수층 마니아 아니고는 이제는 접근하기 어렵다 어려서 단명이라 절에다 터를 판 뒤에는 가까이 하지 ..

남과북/정종배 은평한옥마을 메뚜기다리 금을 넘자 야간사격 총소리가 어지럽다 느티나무 곤충호텔 지나다 돼지감자 꽃을 보고 뚱딴지같은 상상을 해본다 오늘 밤 12시 정각 남과북 종전 협의 폐기하고 휴전선을 제거하고 전면개방 시행한다 이제 총과 대포 소리 들려도 전쟁이나 훈련 ..

늦가을/정종배 ㅡ망우리공원 단풍잎 한 잎 떨어진다 죽음이다 부음이다 화려찬란 남녀노소 탄성을 지르는 철부지다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은 자살방조 죄로 죄 감옥에 가둬야 여기까지 가짜뉴스 팩트체크 잎을다 떨궈야 한겨울 추위에도 살아남아 내년 봄 소식을 전하는 꽃이 핀..

오로지/정종배 ㅡ망우리공원 봄에는 꽃 여름에는 물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꽃 나에겐 달항아리 달항아리 내 사랑아

무심코/정종배 ㅡ망우리공원 오늘하루 심심해서 길을 걷다 무심코 내던진 사랑한다 네 말 한 마디가 꽃이 피고 열매 맺어 모든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달항아리 내 사랑아

비누/정종배 ㅡ망우리공원 빛이 되라 빚만 남고 소금 되라 짐만 남고 입으로만 살지 말고 몸으로 살아가라 목에 힘을 빼고 비누가 되라 달항아리 내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