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 가을 숲 가을 숲에 도토리가 굴렀다 다람쥐는 앞발을 부시게 비벼댔다 청설모는 꼬리를 바짝 치켜세웠다 멧돼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줌마가 막대기를 막 휘저었다 이중에 끼지 말아야 할 동물은 입산금지 가을 산은 생존의 정글 그래 단풍잎이 저리 곱게 물들까 정종배 시 2017.10.11
달항아리 달항아리 구월 새털구름 가을이 오셨다 덜어 덜어내자 인생에서 덜어내자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욕망을 가난한 이웃과 무관한 행복을 차고 넘치는 사랑의 가벼움을 오늘도 퍼 퍼담아 아무리 퍼담아도 덜어낼 덜어낼 것이 없는 내 사랑 완벽하지 않아도 덜어낼 것이 없어 끌어 안.. 정종배 시 2017.09.13
요양병원 요양병원 교외 장기 요양병원 원우들이 철 따라 바람쐬려 강둑을 휠체어로 오간다 꽃 풀꽃 풀꽃밭을 지나며 저렇게 철 철 따라 피었다 스러지면 때 맞춰 잘 떠났다 뒷모습이 아름답다 운명을 사랑하였다 박수를 받을까 환절기다 아프지 말아야겠다 정종배 시 2017.09.12
무명교사의 변 무명교사의 변 처음에는 꽃도 네모 칸 안에만 피는 게 당연하다 가르쳤다 가는 곳마다 사람 속 외딴 곳에 꽃이 피었다 내 자신을 되새겨보고 사랑으로 길을 걸어 외로운 손을 잡아 더불어 살아야 한다 때마다 다짐하며 두려워 말자 이제부터 사람다운 사람을 앞세워 걸어가야겠다 겁도 .. 정종배 시 2017.09.08
진관사 상사화 상사화 침묵보다 더 나은 어둠보다 더 깊게 상사화보다 더 간절히 할말 있을 때 입을 열어라 집중호우 뒤 진관사 세심교 밑 시원스레 부서져 걷잡을 수 없는 물소리로 그래도 말은 말일 뿐이다 너무 쉽게 말로 금방 꽃 피우려 하지 말라 정종배 시 2017.08.31
하느님 앞에 섯을 때 이 세상 다 하여 하느님 앞에 섯을 때 물으시겠지요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고 정신을 다 하여 너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였는가 오늘도 아침밥 한술 뜨고 헐레벌떡 뛰쳐나와 구파발역 출발하는 전동차 약자 보호석에 앉아 가려 오지 않은 마을버스 여유로운 운전기.. 정종배 시 2017.08.31
인연설 인연설 너는 너는 바람부는 들판에 서 있는 바늘 하나 나는 나는 바람에 날리다 그 바늘귀 꿰뚫은 실오라기 하나 무문관 하시다 볕 바라기 나오시는 청운암 덕운스님 해진 장삼 자락 홈질하는 조각구름 가을하늘 박음질한 조각구름 한 잎 한 잎 업장 하나 더 덧대는 오늘하루 정종배 시 2017.08.31
길상사 진관사 길상사 진관사 두 산문 안에 백중 절기가 무르익어 연꽃이 소담스레 피었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은 법정스님께서 김수환 추기경께 의뢰하여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 손끝에서 마리아상 닮아 처음에는 뜨아했으나 시절인연으로 받아들여 지금은 시인 백석과 길상화 김영한 보.. 정종배 시 2017.08.31
뻘낙지 뻘낙지 함평만 술안개 뻘낙지가 오늘 아침 밥상에 기어이 상경했다 봄 꽃이 피어 길 꽃길을 집사람이 앞장 섰다 꽃 한 송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시 한 줄 쓰지 못 했다 옆직이는 낙지보다 세다 껌딱지보다 심이 좋다 올 봄도 또 이리 살아났다 정종배 시 2017.05.26